이상윤

A.K.A 귤PD
텍스트의 문단과 자간 사이를 방황 중입니다. 팟캐스트 '시골은 외않되'를 제작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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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의 문제는 곧 농협의 문제다”

이만큼 농협은 농업분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농사를 짓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저 은행 중 하나인 농협. 하지만 농협은 의외로 덩치가 꽤 크다.

한국 농협은 200만명의 조합원, 26개의 계열사를 갖고있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재계서열 10위인 대기업이다(올해 기준).

우리에게 익숙한 농협의 금융부문은 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의 지점을 다 합쳐서 5,000개가 넘으며, 농협 하나로마트는 2,000여개가 넘는 점포수를 자랑한다.

따라서 농협은 농민뿐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생활에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농협이 어떤 조직이냐고?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농협은 훨씬 큰 조직이다. © 한국의 농협

 

농협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 농업경쟁력강화로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에 기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을 목적으로 ‘농협법’이란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농업협동조합’의 줄임말인 농협은, 농민이 주인인 협동조합이라는 뜻으로 농협이 전개하는 방대한 사업은 농민들을 위해서 이루어져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직이라고 말할 때 위화감을 느낀다. 정말 농협은 농민을 위한 조직일까?

이 위화감과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는 초기 농협의 성립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농협의 뿌리

농협의 성립은 대한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무 11년(1907년 5월 30일), 칙령 제33호 14개조로 이루어진 ‘지방금융조합규칙’을 농협 설립의 시초로 볼 수 있다.

당시 칙령은 ‘농민의 금융완화와 농업의 발달을 목적으로 하며, 조합의 역할을 농업에 필요한 자금의 대부와 조합원이 생산한 곡류의 창고보관’으로 규정한다.

조합원 구성 또한 농민으로 제한했으며, 소작농을 중심으로 하고 지주는 피할 것을 명시했다.

이 칙령에 따라 광주지방금융조합의 설립을 시작으로 조합들이 설립되기 시작하고 이들 지방조합들은 지방금융연합회를 구성한다.

하지만 초창기 농민조합의 한계는 뚜렷했다. 우선 조합원 구성을 살펴보면 설립취지와 다르게 소농의 비율이 적었다. 이는 자산상태가 양호하고 채무변제가 확실한 사람만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한 조합 설립을 통감부가 주도하면서 당시 조선의 농업을 관리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조합조직이 아닌,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형태의 조직이 되었다.

 

농협 설립을 둘러싼 이전투구

 

 

이후 1910년, 한일 강제 병합과 일제강점기 시기가 도래했다.

대한제국이 설립한 지방금융연합회도 일제에 의해 조선금융조합연합회로 명칭을 바꾸어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관제적 하향식 조합에 반대한 농민단체 및 민간에서 협동조합 조직운동이 일어나지만 실패로 끝난다.

 

한국전쟁 이후 자유당 정권에서 농업협동조합에 대한 논의가 계속 되었다.

1949년 농림부의 주도로 농협법의 입법화를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지다 1957년에 농업협동조합법과 농업은행법이 제정됐다.

이듬에 1958년에 농협중앙회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농업은행이 업무를 개시했다.

1949년에 시작된 농협법 논의가 9년이란 시간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시 이승만의 협동조합에 대한 무지와 혐오, 불신이다.

이승만은 협동조합을 공산주의의 아류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자유당계 정당도 사회적경제 관련 법안을 빨갱이 제도라고 반대를 하고 있는데, 이런 인식의 뿌리는 이승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당시 제헌국회의 국회의원은 대부분 지주 출신이었다.

농민을 위한 조직인 농협의 설립을 환영하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많았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셋째, 금융조합의 재산 및 업무의 인수문제를 두고 농림부와 재정부 간의 의견대립이 심각했다. 농림부는 조합이 농촌 경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금융사업이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는 입장이었고, 재정부는 농촌 경제사업은 농림부가, 금융사업은 재정부가 가져가야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의견대립으로 인해 농협법이 정식으로 제정되기 전, 재정부의 주도로 1956년 ㈜농업은행을 설립하고 금융조합의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이로 인해 농협법에 대한 논의는 재정부의 승리로 끝나고, 농업협동조합법과 농업은행법이 따로 제정됐다.

네 번째는 협동조합 설립의 원칙론과 현실론의 대립이다. 원칙론자들은

‘협동조합의 성립은 자연발생적이어야 한다. 자발적 조직이야말로 조합원 주체의 협동조합에 불가결한 요건이며, 정부는 보호육성과 세제감면 등의 혜택만 제공해야 한다.

설립 때부터 법 제정을 선행하면 관제조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현실론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여러 나라의 협동조합 역사를 볼 때 설립 초기에는 선구자나 지도자의 영도가 크기 때문에 농민의 역량과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되기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비강제적·비간섭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배척할 일이 아니다.’

 

이 논의의 승자는? 바로 현실론자다. 이로 인해 상향식 조합설립이라는 농민의 꿈은 무너지고, 농협은 관제적∙하향식 조직으로 설립된다.

군부독재의 시작과 농협

 

군사독제 시대의 박정희. 그는 민생고 해결을 위해 선거제도를 버렸다. © wikipedia

 

이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민주당 정권에서도 농협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5.16 사태로 인해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논의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당시 군부는 쿠데타의 이유로 ‘혁명공약’을 내세웠는데, 이 중 4번째인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을 수행하기 위해 농촌 경제 안정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농촌 경제 안정화를 주도해야 할 농협은 자금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의 합병이 결정되었다.

사태가 일어난 지 9일만의 결정이었다. 합병이 결정된 이후(1961년 7월 29일), 구 농협법과 농업은행법이 폐기되고 새로운 농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된다.

 

하지만 새로운 농협법이 제정되면서 또 다른 폐단이 발생하게 됐다. 조합장을 선출하는 민주적 선거제도가 사문화되고, 농협중앙회장직을 임명제로 바꾼 것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농협은 비민주적이고 비자율적인 조직이 되었다.

 

이제는 진정한 농업협동조합 모습을 보여줄 때

 

농협중앙회 사옥 © 한국의 농협

 

앞서 살펴본 초기 한국 농협의 성립과정을 돌아보면 지금의 농협은 민주적으로 변화한 편이다.

하지만 농협 설립을 위한 논의과정에서 나타나는 협동조합의 몰이해와, 이권경쟁으로 조합의 관리감독권이 정부부처에 귀속되는 상황이 정말 오랫동안 지속됐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조직인가?’라는 인식이 지금 와서 생긴 건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농협은 이런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꾀했다.

민주화 열기로 뜨겁던 1988년 농협도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존에 조합장과 중앙회장이 정부에서 임명하는 방식에서 조합원이 직접 조합장을 선출하는 직선제가 도입이 되었다.

조합장의 선거는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선거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위탁받아 진행한다.

 

같은 시기 농협의 사업계획, 수지예산 승인제도도 폐지되면서 사업의 자율성을 보장받게 되었다.

또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때부터 농협이 ‘금융사업의 집중화로 인해 본령인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을 등한시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2012년, 중앙회와 금융지주, 경제지주로 조직이 분리됐다.

한국농협은 2009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ICA글로벌300’의 조사에서 세계에서 9번째로 큰 협동조합으로 선정됐다. 농협은 그 거대한 규모만큼 한국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농협의 슬로건은 ‘가치의 가치를 믿습니다’ 이다. 거의 모든 농민이 농협의 조합원인 이상, 농협의 사업계획이 잘 되면 농촌이 잘 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농협은 자신의 덩치를 잘 알고 있을까.

어쩐지 농민은 여전히 농협을 불신하고, 농협은 농민과 각자 ‘마이웨이’를 걷는다는 느낌 뿐이다.

이런 농협이 진정한 협동조합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그 날을 꿈꿔본다.

 

*참고자료

김용택, 2015, <한국 농협의 뿌리와 성립과정>, 역사비평사

농협중앙회, 2016, <한국의 농협>

농협동인회, 2017, <한국 종합 농협 운동 50년>

 

 

※농협의 탄생 이야기는 팟캐스트 <시골은 외않되?>에서 10화 당신이 몰랐던 농협 (1/2) 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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