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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와가 농사짓는 경남 합천의 땅
경남 합천군 황매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어느새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여섯 해 째가 되었다. 자연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라면 내 삶을 들여 해볼 만한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나를 농민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나에게는 낭만과 작은 자유를 지키며 살고 싶은 꿈이 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작지만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사는 삶이 나에게는 낭만이다. 세상을 낭만으로만 살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낭만 하나 없이 살 수도 없다.
나는 산골 마을에서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지켜갈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마을도 여느 농촌처럼 또래 청년을 만나기 어렵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용기를 내어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 그러다 헬로파머 페이스북에서 ‘시골 발굴 in 옥천’ 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보았다.
‘옥천신문사와 월간 옥이네’를 통해서 옥천을 알고 있었고, 기회가 되면 옥천이 어떤 곳인지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시골 발굴 캠프가 기다리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경남 합천에서 충북 옥천까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별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시간이 편안했다. 바쁜 농사철을 보내다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설레임, 아름다움, 그리고 불편함을 마주하다
지역 문화 창작 공간 ‘둠벙’에 모여서 캠프가 시작되었다.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첫 만남다운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캠프를 함께하는 사람은 스무 명쯤 되었다. 작은 모둠이 편한 나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아서 더 좋았다. 캠프 첫 날에는 ‘옥천의 생태’를 주제로 용암사와 부소담악, 생활 폐기물 처리장에 다녀왔다. 자연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용암사와 부소담악도 좋았지만 생활 폐기물 처리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외국에서 전환 마을 탐방을 가면 그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을 둘러보는 일이 많다고 한다. 내가 버리고 가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직접 보는 것이다.
옥천은 쓰레기들을 소각해 재를 땅에 묻는 방법으로 폐기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재활용이 되는 것 빼고는 모두 소각하기 때문에 음식물도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환경을 위해 법으로 정해놓은 기준을 잘 지키고 있었지만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에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줄이려고 애써도 차오르는 쓰레기통을 볼 때마다 자연에게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된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생활 폐기물 처리장을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합천은 어떻게 쓰레기 처리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농촌에도 다양한 욕구를 담은 선택지가 필요해
둘째 날은 배바우 마을 공동체와 호미네 목장 그리고 옥천신문사, 월간 옥이네로 모둠을 나누어 옥천을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모두 가 보고 싶어서 하나만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농촌에 살면서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옥천신문과 월간 옥이네를 선택했다. 옥천 신문사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월간 옥이네를 자세히 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옥천신문에서는 황민호 국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옥천신문은 30년 전, 지역 주민들이 조금씩 모은 돈으로 만들어진 언론사였다. 지금도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 정신을 지켜왔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힘이 느껴졌다. 황 국장님은 지역민들에게 꼭 필요한 신문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하셨다. 조그만 농촌이라고 해도 다양한 열망과 욕구가 있고, 그 바람을 잘 꿰어서 연결해 나갈 때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을 모아 꿰어 가는데 신문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바라는 농촌을 그릴 때 언론까지 떠올리지 못했다. 황국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지역 공동체를 일구어 가는데 건강한 언론은 꼭 필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옥천 신문사와 월간 옥이네에서는 청년이 많이 일하고 있었다. 지역에서 꼭 농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농촌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내가 살고 싶은 지역에 남아서 자부심을 느끼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농촌에 기반이 없는 청년들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될 수 있는 일자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을 먹고 옥천신문 오정빈 기자님과 민원 현장 취재에 다녀왔다. 옥천신문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취재 현장까지 둘러볼 기회가 되었다. 덕분에 옥천신문사 일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여러 의견이 쏟아져 나와 부딪히는 민원 현장에서 기자로서 필요한 질문을 하고, 기록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취재를 가는 길에 가장 궁금했던 것은 지역 주민들과 군청 공무원들이 젊은 여성 기자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것이었다. 아직 농촌에서 젊은 여성은 약자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는 기자님 모습을 보면서 기자로서 존중받으며 그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고 느꼈다. 짧은 시간을 함께한 것만으로 모든 걸 알 수는 없겠지만 옥천에서 기자 생활을 하는데 젊은 여성이라는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아 보였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모습이 옥천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당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애정과 연결을 발굴한 시간
옥천에 있는 공간과 일, 그곳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옥천’이 어떤 지역인지 느낄 수 있었다. ‘시골 발굴’이라는 캠프 제목과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합천에 살고 있지만 아직 합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이번 캠프를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알고, 애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촌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은 지역이 살아나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산골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친구들을 기다리는 청년 농민으로서 우리 지역을 조금 더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매력이 있는 곳으로 가꾸어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살아가는 곳을 조금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바꾸어가는 일이니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생각도 든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안에 새로운 생각이 많이 찾아왔다. 그 생각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소화시키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캠프를 마치고 각자 삶터로 돌아갔지만 이번 캠프를 통해 느슨한 연결고리가 생겼다. 이렇게 연결되다 보면 우리가 바라는 일을 하나씩 이루어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합천에 놀러오라고 했던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이번 만남 통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좋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깜깜한 밤하늘에 나를 이끌어줄 별이 더 많이 반짝이게 된 것이니 말이다. 나에게 좋은 시간과 소중한 생각을 선물해 준 옥천과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따뜻한 눈으로 우리를 맞아 주고, 우리 밥상을 맛있고 든든하게 챙겨 주셨던 향수뜰 분들도 참 고마웠다.
이번 캠프 단체 티셔츠에 ‘이렇게 귀한 곳에 이렇게 귀한 분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첫 눈에 마음에 쏙 들었다. 이 문구처럼 이렇게 귀한 곳에, 소중한 것을 알아보는 귀한 분이 더 많이 찾아와,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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