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롬

'생태라는 틀에서의 농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골에서 미니피그 키우며 사는 로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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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겠다 결심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농지를 사야 할까, 기를 작물을 먼저 정해야 할까, 아니면 농법을 정하는 것이 우선일까.

일본에서는 이 모든 것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격’을 먼저 받아야 한다

이 자격은 특정 규모의 농지를 갖고 농사짓는 서류가 정한 기준만 충족하면 되는 한국의 농지원부와는 결이 다르다.

바로 먼저 농사를 짓고 있는 다른 농부에게서 1년 동안 농사를 배워야 하는 것.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서 1년 동안 농사를 배웠다는 승인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그는 농부가 될 수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농사

고베에서 ‘아침이슬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농부 나카노 신고

 

고베에서 ‘아침이슬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나카노 신고 씨도 그렇게 농부가 되었다.

땅을 갈지 않고, 비료를 쓰지 않고 토질의 기후와 작물의 성질에 따라 자연스레 맞추며 자연과 그 안의 생명에 순응하며 따르는 자연농(‘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 인용)을 실천하는 농부 가와구치 요시카즈 씨에게 2004년부터 1년간 농사를 배운 뒤 자연농법으로 농사짓고 있다.

신고 씨 농장은 차로 가깝게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조그만 밭 여섯 개가 조금씩 흩어져 있다.

우리는 그 농장 중 두 군데를 방문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밭은 겨울에 보리를 재배하고, 보리를 수확한 뒤에 쌀을 경작하는 곳이었다.

보리싹이 자라는 첫 번째 밭에는 빗방울을 동반한 바람이 소스라치게 불었다.

차가운 기온과 거센 바람 소리를 피해 신고 씨는 작은 비닐하우스로 우리를 안내했다.

 

일본 꿀벌을 키우는 벌통을 설명하는 신고 씨. 짚더미 너머로 보이는 작은 건물은 그가 직접 만든 건식 생태화장실이다.

 

걸음을 옮기는 도중 지나치는 벌통과 건식 생태화장실을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좌식으로 앉을 수 있는 생태화장실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동농장의 생태화장실과는 모양도, 쓰임도 달랐다.

같은 땅에서 자란 부산물만 먹고 자란 동물의 분변은 퇴비로 쓰지만, 화장실에서 나온 것은 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과실나무에만 줄 뿐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양분이라도 외부의 것은 투입하지 않는 것이 자연농의 원칙이에요. 같은 땅에서 나온 것들이 순환하는 것이 균형을 유지하거든요. 퇴비를 많이 쓰지 않는 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자연스럽게 맞춰지게 되죠. 트랙터로 갈아주면 비료를 계속 줘야 하는 자립할 수 없는 땅이 돼요. 그래서 어렵더라도 이렇게 하고 있어요.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이런 방식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퇴비의 다양한 사용법

하우스는 그와 그의 아내를 포함한 사람 7명이 들어가니 꽉 차는 크기.

사람을 제외하면 쌀겨와 낙엽, 모종판과 온도계만 달랑 있을 뿐. 비닐하우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연스러운 방식에 맡긴다.

난방시설이 전혀 없는 작은 하우스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비결은 산에서 주워온 낙엽과 쌀겨, 물을 섞어 만든 퇴비.

하우스의 1/3의 면적을 차지하는 퇴비 더미가 발효되면 하우스 안이 데워진다.

이 열로 4월까지 눈이 내리는 고베에서 어린 모종을 따뜻하게 기르는 데 충분하다.

1년이 지나 퇴비가 충분히 발효되면, 하우스 밖으로 꺼내 쌀겨와 지푸라기를 섞어 2주 동안 다시 발효의 과정을 거친다. 그것을 체로 걸러내 흙을 섞어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것은 100년도 더 넘은 일본의 전통적인 농사방식이다.

 

우리는 안락한 퇴비더미에 앉아 신고 씨와 대화를 나눴다. © 김현곤

 

소개를 마친 그는 우리에게 퇴비 더미 위에 앉을 것을 권했다.

어떤 매트리스보다 폭신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의외의 안락함에 신기해하는 한국의 청년들과 그 풍경을 즐거이 바라보는 일본의 농부.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는 퇴비더미가 제공한 안온함에 마음이 녹았다.

 


농사와 관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꾸준함

 

“트렉터로 밭을 갈고 비료를 주는 농법은 그리 힘들지 않아요. 계절마다 씨를 뿌려서 수확하는 것도 테크닉을 알게 되면 그리 어렵지 않을 거고요. 하지만 자연농을 하려면 정해진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관찰하면서 자연의 습성을 깨우쳐야 하니까 조금 더 어렵죠. 대신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즐겁고 만족도가 높아요. 그래서 저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런 농법을 추천할 수 있어요. 이게 제가 자연농이 어려워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이유죠.”

 

신고씨의 밭은 낮은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진 아래에 위치한다.

 

신고 씨의 아침이슬농장은 고베 파머스마켓에서도 인기 있기로 유명한 농장.

그럼에도 신고씨는 농사를 지으며 가장 어려운 점으로 마케팅을 꼽았다.

“하지만 자연농으로 꾸준히 농사지으면 결국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렇다고 농사만 열심히 짓는 것은 아니다.

주말에는 파머스마켓에 출점하고, 레스토랑의 요리사는 물론 야채가게의 주인과 개인 소비자와도 대면해 직접 농산물을 판매하는 그.

1년 중 1월에만 조금 쉬고, 늘 거래할 야채가 있도록 신경쓴다.

“쉬려면 언제든 쉴 수 있지만, 사실상 긴 휴가를 떠나긴 힘들죠. 살아있는 작물의 상태를 지켜보는 일은 중요하니까요.”

이런 삶은 고되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도 권할 수 있을만큼 행복하다는 그.

특정 작물을 심어 수확하기 보다는 다양한 생물이 뒤엉켜 균형잡힌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농부의 일이다.

그렇게 밭이 건강한 것이 자신도 건강한 것, 자신의 건강이 곧 자신의 농사와도 연결된다는 믿음.

자신이 일궈 낸 생태 시스템을 농부는 꾸준히 들여다보고, 균형을 조절한다.

 

신고 씨가 자연농 공부를 위해 만든 농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구좌씩 분양받아 농사를 실험한다.

 

신고 씨의 꾸준한 활동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와구치 씨 견습생시절인 2004년부터 속한 ‘아카메(가와구치 씨가 운영하는 자연농 공부모임)’에서 여전히 공부하는 그.

자연농의 기초를 가르치는 아카메의 공부를 심화하기 위해 신고씨도 직접 자연농 공부모임을 운영한다.

그는 차로 5분정도 떨어진 거리에 자리한 학습농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키메의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은 농부부터 산파, 교수, 교사, 영양사, 종교인… 다양한 사람이 신고 씨 밭 일부분을 분양받아 자연농에 대한 공부와 실험을 하는 곳이다.

생산은 물론 소비자를 찾아가고, 공부도 꾸준히 지속해 오는 실천. 그것이 아침이슬농장을 이끄는 농부 나카노 신고의 생존전략인 듯 보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은 충만하다

 

 

농부가 되기 전 그는 사진작가였다.

1995년 고베대지진을 겪은 그는 전기나 먹거리 같은 생활에 필수적인 것과 단절되는 경험을 한 뒤, 사람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화학약품을 지나치게 써서 인화하는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며 환경운동도 하고, 반농반X로 지내며 어업이나 옷을 만들어 파는 일도 하다 자연농에 정착한 그.

‘자연에 친절한 삶’을 살고 싶어 유기농 마켓에서도 일하고, 봉사활동도 했다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함께 생태계를 일구며 살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가 강조한 ‘다양성’과 ‘균형’은 그의 삶에 궤적과 고민에도 드러나 있었다.

자신이 일구는 밭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는 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한 삶.

그것이 고된 소농이 자신의 농사를 지켜내는 가장 큰 비법이었다.

 

신고 씨가 아침이슬농장을 방문한 통역사, 헬로파머, 팜프라 멤버와 그의 아내를 촬영해 전해준 사진 © 나카노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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