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롬

'생태라는 틀에서의 농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골에서 미니피그 키우며 사는 로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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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진 | 기획자, 팜프라 구성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디테일을 봤다”

얼마 전, 밀양의 어느 사과즙 리브랜딩을 의뢰 받았다. 네이밍과 로고 디자인을 새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타겟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고객을 넘어 새로운 고객의 유입이 필요했다. 이에 아이들을 타겟으로 한 귀여운 이미지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거듭되는 시도에도 그다지 매력적인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 듯은 하지만 굳이 선택하고 싶지는 않은 애매한 디자인. 이상하게 마음 한 켠에 어딘가가 거슬리는 디자인.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혹시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기 음료’를 검색해보았다. 신기하게도 인스타그램 사진들이 유독 많았다. 아이가 음료를 마시고 있는 사진, 꽃과 함께 음료가 놓여있는 탁자 사진, 그리고 음료가 차곡히 배열된 냉장고 사진.. 모든 사진 속의 음료는 그 자체가 아니라 중심이 되는 것을 꾸며주는 주변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음료는 단순히 음식을 넘어 도시의 아파트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요소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내가 자꾸만 ‘농부’와 ‘사과’ 라는 이미지에 집착한 것은 사과즙이라는 제품을 오직 생산자의 시선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생산자 중심의 시선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
소비자는 어떤 환경에서 지내고 있으며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 해야한다.
그렇다. 농업을 도시에 알리기 위해서는 결국 도시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난 일본에서 발견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상품, 책, 음식, 마을, 이야기, 디자인 등등 층위를 만들어내는 도구는 다양했다.

이 도구들을 적시적소에 알맞게 잘 사용하여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 생겼다.

 


 

이시원 | 통역

 

“시각적 표현만으로 농부의 삶,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행복을 동경하게 될 만큼 일본인들의 감각은 탁월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무안에서 자랐지만 고향에 대한 애정은 없었다.
재미있는 일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항상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는 시골살이가 싫었다.
더구나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디자인과에 진학하고 싶어 하던 학창시절의 나에게 문화생활의 볼모지나 다름 없는 무안은 나에게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농촌의 좋은 점이 속속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없어야 중함을 안다고, 대학에 진학해 서울에 살기 시작한 후부터다.
나는 아직은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점점 썰렁해지는 고향에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여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궁금한 일본 농촌의 모습을 직접 눈에 담고 나고 자란 무안의 모습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경험해 본 고베 파머스 마켓 등을 보면 일본 농업은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형태를 잘 바꿔온 것 같다.
농산업에 종사하는 생산자들 외에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널리 알리려는 활동가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카미야마 마을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특히 지산지소를 실천하는 Food Hub Project가 기억에 남는다.
나에겐 익숙한 시골 마을인 카미야마에서 본 의외의 활기가 무척 부러웠는데, 소멸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농촌들도 이런 방향으로 가면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1차 생산 이외에 가공이나 판매에도 직접 종사하는 농민이 늘어나고 집단지성을 활용해 농촌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면 도시의 피곤한 삶 대신 그곳에서 살고 싶어할 젊은이들이 많을 거다.
함께한 팜프라와 같은 유의미한 시도가 많아지면 한국에도 카미야마 같은 곳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리고 또 일본에서 팸플릿과 소품들도 유심히 봤는데 이 일에 젊고 감각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실감했다.
시각적 표현만으로 농부의 삶,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행복을 동경하게 될 만큼 일본인들의 감각은 탁월했다.
혼자 배운 일본어라 통역을 잘못해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많은 사람의 도움 덕에 임무를 다할 수 있었고 후회 없는 동행이었다.
이 여행으로 많은 영감을 받았을 헬로파머와 팜프라의 행보도 기대된다.
나도 이번 여행 후에 등한시했던 부모님의 농사와 농촌 현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어떤 형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내 감각이나 아이디어로 ‘시골을 힙하게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돕고 싶다.

김현곤 | 헬로파머

“한국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회, 성공적인 답사였다.”

18년을 농촌에서 살았다. 아버지를 따라 각지의 농촌을 다녔다. 호남부터 강원까지. 헬로파머를 세우고 난 뒤부터는 더욱 바삐 다녔다.

다니다보니 갈증이 생겼다. 어디를 가든 똑같았다. 둘둘말린 폐 비닐과 비료포대가 길에 없는게 오히려 이상했다. 보조사업으로 지어진 컨테이너 건물들은 창고로 전락했다.

농촌의 다른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차에 팜프라에서 일본행을 제안했다. 흔쾌히 승락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2월로 예정됐던 일정은 미뤄졌다. 함께하기로 한 팜프라 멤버 둘이 사정으로 이탈했다.

양 대장은 일본 현지와 연락하다가 지쳤다. 나는 양대장을 쪼았다. 그리고 돈이 쪼들렸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숙소와 이동수단의 질을 포기했다. 큰 실수였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인천공항에서 오사카로 가는 오전 7시 비행기를 예약했다. 체크인은 3시간 전인 4시부터 가능하다. 나와 귤피디는 대전에 산다. 대전에서 출발해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버스는 없다. 전날에 올라가 공항에서 노숙해야 했다. 체력을 믿고 밤을 새기로 했다.

객기였다. 새벽이 되니 머리가 미친듯이 돌아갔다. 겨우 버텨 비행기에 올랐다. 그대로 잤다. 창가로 배정해준 직원의 배려가 무색했다. 이아롬 기자가 감탄한 오사카의 하늘과 바다는 보지도 못했다.

통역을 맡은 시원님과 오사카에서 만났다. 시원님의 도움을 받아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말썽이 생겼다. 적용한 줄 알았던 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랑이 끝에 차를 받았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날아온 양대장이 합류했다.

 

치요주조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인스타그램 필터를 자연에 덧씌운 느낌이었다.

치요주조에 도착했다. 치요주조의 물은 점성이 느껴졌다. 쌀은 달았다. 피로가 또 발목을 잡았다. 다다미에 앉아 대화를 촬영하다 그대로 졸았다. 시설을 견학하며 잠을 깼다.

피로를 안고 숙소로 갔다. 가는 길은 좁았다. 결국 휠이 긁혔다.

숙소는 난방이 안 됐다. 떨며 잤다. 3월이지만 밤은 아직 추웠다.

신고 씨를 만나기로 한 둘째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고베로 가야했다. 민영화 된 일본의 고속도로 통행료는 비쌌다. 돈을 안 내지만 시간이 걸리는 무료 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길을 계속 잘못 들었다. 내비게이션은 자꾸 엉뚱한 경로로 안내했다. 고베에 도착했다. 하지만 신고 씨와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날이 추웠다. 신고 씨의 차를 따라 갔다.

신고 씨의 밭에는 작은 비닐 하우스가 있다. 퇴비를 발효하는 곳이다. 따뜻했다.

자연의 순리에 맡기는 신고 씨의 농사 방식은 신선했다. 다 쓴 비료 포대와 빈 농약 병은 볼 수 없었다. 둘둘 말려 아무렇게나 던져진 검은 비닐은 당연히 없다. 눈이 정화됐다.

돌아가는 길.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길을 안내했다. 오사카의 야경이 이뻤다. 난방은 역시나 안 됐다. 잠은 당연히 못 잤다.

셋 째날. 날씨가 많이 풀렸다. 하지만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시 고베로 넘어가야 했다. 고베 시청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을 보기 위함이다. 가는 길이 어제보다 수월했다. 고베의 주차비는 오사카보다 비쌌다. 다들 파머스마켓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스타벅스로 갔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발표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발표문을 다 만들지 못했다. 한국의 일을 일본의 스타벅스에서 하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다시 오사카로 넘어왔다. 강수희, 패트릭 부부가 운영하는 The Branch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골목으로 걸어갔다. 노랫 소리가 들렸다. 구글 맵은 노랫소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노래 소리의 주인공은 The Branch였다. 마침 폐 플라스틱을 이용한 악기 만들기 워크숍을 하고 있었다.

지쳐 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는데, 모두 사라졌다. 일본으로 온 이유가 그제서야 생각났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걸 보자”

공간에 집중했다. The Branch는 작았다. 하지만 알찼다. 수희님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 켠에 있는 공간을 소개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며, 여기에서 책을 읽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신기했다. 한 뼘짜리 공간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게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 하기 때문이다.

수희님은 텃밭을 소개했다. 텃밭은 아주 작았다. 그 작은 땅에 둘은 조약돌로 구획을 나눴다. 구획마다 무엇을 심을지 말하는 수희님의 눈이 빛났다.

돌아오는 길은 편안했다. 마음이 안정됐다. 호스트는 우리에게 히터를 선물해줬다. 오랜만에 따뜻하게 잠을 잤다.

삼일간 머물렀던 숙소를 떠나는 날. 날씨가 맑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카미야마로 향했다. 세 시간 넘게 차를 탔다. 귤피디가 고생했다.

카미야마가 있는 가고시마로 가는 다리에 진입했다. 다리는 길었다. 차창 밖으로 바다가 반짝였다. 다리를 건너 계속 달렸다. 길은 우리를 숲으로 인도했다. 한국의 시골과 같은 풍경이 계속 됐다.

카미야마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렸다. 땅을 밟으니 다리가 저렸다. 푸드 허브에서 점심을 먹었다. 로컬푸드를 얼마나 썼는지 알려주는 게 믿음이 갔다. 푸드허브 앞의 베이커리에서는 카미야마에서 난 우유로 만든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허기를 채우고 가라오케 토리가 있는 카미야마 Week을 향해 걸었다. 라이더들이 가라오케 토리를 통해 노래를 틀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됐다. 2cellos의 smooth criminal을 틀었다. 기분이 좋았다. 여러 노래들을 틀었다. 여유를 즐겼다.

 

요일마다 공간과 주인이 바뀌는 카페 우메보시에 왔다. 그동안 닫혀 있던 입이 활짝 열렸다. 질문을 계속 했다. 시원님이 진땀을 뺐다.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을 계속 타야하는 삶이 싫어 내려왔다는 나츠미 씨의 말에 공감했다. 카미야마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지역임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시즈쿠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나무 컵이 눈에 띄었다. 사고 싶었으나 가격을 듣고 단념했다. 술잔을 산 귤피디가 부러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편안했다. 카미야마 생각이 자꾸 났다. 카마야마 같은 곳에서 일을 한다면 능률이 절로 오를 것 같았다.

마지막 날, 한국으로 왔다. 인천공항으로 오자마자 한국에 왔다는 게 실감 났다.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나를 다시 일본으로 보내려 했다. 기가 질렸다.

한국에 온 뒤, 여러 지인들을 만났다. 만날 때 마다 카미야마 이야기를 했다. 가라오케 토리를 만들고 싶은데, 쓸만 한 땅이 있냐는 말도 곁들였다.

한국에서 보지 못 한 것들을 맘껏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목적을 매우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이자리를 빌어 함께한 사람들에게 모두 고맙다는 감사를 전한다.

 


이상윤 | 헬로파머

“각자의 디테일에서 섬세한 고민을 발견했다”

  1. 사람들의 표정을 찾아 떠나는 여행

귤 : 나 오사카간다!

친구 1 : 오사카가면 도톤보리 가봐. 한국사람들이 바글바글 할거야.

친구2 :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꼭 가봐. 비싸지만, 진짜 좋아.

귤 : 나 오사카에 더브랜치라는 곳 가는데…

친구 1 : 거긴 어디야?

친구 2 : 오사카까지 갔는데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가봐야지.

귤: 나 고베도 가야돼

친구 2 : 고베에 가면 고베규! 내가 맛집 알아. 알려줄께

친구 1 : 고베규 진짜 맛있다는데.. 먹고 와서 이야기 해줘

귤 : 나 농장이랑 파머스마켓 가는데…

친구 1 : 농장?? 농장은 왜??

친구 2 : 고베규 생산하는 농장에 가는거야? 우와~

귤 : 그건 아니고… 아!마지막엔 도키시마에 카미야마라는 곳도 가.

친구 1 : 도키시마? 도키시마가 관광지인가? 거기 볼 거 있어?

친구 2 : 방금 검색해봤는데 도키시마가 일본에서 인지도 최하위인 지역이래

 

우리들이 다녀온 일본 농촌탐험대의 일정과 코스를 이야기할 때의 반응이었다.

농촌으로 여행을 가? 유명하고, 맛있고, 구경할 곳이 얼마나 많은데 왜 농촌으로 가?

 

하지만 일본 농촌탐험대가 다녀온 곳들은 유명한 관광지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현지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행의 목적이 단순히 유명한 장소나 풍경, 건축물을 보러간 것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보고, 그들이 만들어 나가는 문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침이슬농장에서 자연농을 실천하는 나카노 신고 씨, 더브랜치라는 공간을 운영하며 자신들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강수희씨, 카미야마 마을을 변화시키는 여러 청년들. 우리의 여행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는 관광객이 몰리고,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자본이 몰리고,자본이 몰리면 현지민들의 자리를 밀어낸다. 우리의 여행이,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여행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중심에 있는 여행이었기에 여행 후에 남은 여운과 울림이 더 컸었다.그리고 한국으로 돌어와서도 여행을 계획할 때 유명한 관광지를 중심으로 코스를 짜기 보다는, 그 지역, 현지민들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장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1. 변화를 이끄는 기술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공연행사 기획을 배울 때 사수에게가장 많이 혼났던 것이 하나 있다.

‘행사 주제 잡고, 프로그램 짜고, 공연팀 섭외하고, 홍보하고…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단지 실무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행사,이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지. 근데 넌 의미에 대한 고민 없이 일을 쉽게쉽게 하는 것 같아.’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고베 파머스마켓에서 만난 다스쿠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고베 파머스마켓은 단순히 사람을 모으기 위해, 비어 있는 시청 앞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고베의 농산물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미식도시 고베라는 커다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북부 지역의 농촌와 남부 지역의 도심을 연결하고, 로컬푸드와 지역의 쉐프,시민들을 연결하는 공간으로의 역할을 위해 기획되었다.

기획 진행에 있어서도 굉장히 섬세하게 진행되었다. 고베 파머스마켓 기획의 이전과 이후의 맥락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를 통해 변화할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고민하고, 변화에 동참할 사람들과 연대를 고민하고 있었다.

헬로파머 역시 앞으로 많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그 고민을 함께 즐겨주시길.


이아롬 | 헬로파머

“태도가 문화를 만든다”
매너는 사람을 만들지만, 사람은 문화를 만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모두가 인정하고 감탄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
그런 지점에서 문화불모지인 시골,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일본의 농촌을 들여다보고 충격을 받은 지점은 바로,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농산물마다, 장소마다 사연이나 정신이 깃들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시각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에서 바라본 여러 단상을 보고 닭이 먼절까, 달걀이 먼절까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에 신경 썼기 때문일까?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생산물의 퀄리티를 높였기 때문일까?
뭐가 문제든 상관없다.
일본에서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작은 일상에도 의미를 부여해 반복하며 노력하는 개인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일본에서의 여정을 홀로 기록했기 때문에 나의 감상은 기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기사를 다시 한번 봐 주시길. 🙂

이아롬

'생태라는 틀에서의 농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골에서 미니피그 키우며 사는 로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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