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롬

'생태라는 틀에서의 농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골에서 미니피그 키우며 사는 로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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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롬쌤,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요?”

차가운, 그러니까 찬우물 농장 이상린 대표가 말하는 ‘농부로 사는 삶’은 뭘까.

도시농장을 운영하며 자신만의 농사를 짓고 소비자와 거래하는 차가운도 엄연한 농부다.

하지만 뜬금없는 그의 질문은 ‘평생’ 농부로 살 수 있는 삶을 의미하겠지.

그런 삶을, 우리는 살 수 있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플리마켓의 안내 역할을 했던 차가운

 

오전에만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하루종일 비가 내린 플리마켓 날.

차가운 도시의 유기농은 보안여관 구관 입구에 부스를 차렸다.

빗방울과 한기가 차도유 부스로 밀려들어왔다.

 

 

‘도시의’를 담당한 로이든 쉐프는 보안여관 신관 4층에서 그만의 키친바를 갖췄다.

도시의의 안락한 실내공간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차도유가 보안여관 플리마켓의 시작과 끝 지점에 자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우리에게 큰 든든함이 됐다.

 

 

“우와!”

“아유, 장돌뱅이 생활 하루이틀 하나”

오자마자 착착, 부스를 완성한 차가운.

사실 차가운은 마르쉐를 비롯한 파머스마켓에서도 셀러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사실 처음하는 세모아를 준비하며 면과 삼베로 된 천을 조금씩 샀지만, 그가 꾸민 부스를 보며 꺼낼 수 조차 없었다.

그는 농산물을 돋보이게 해주는 세팅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 해냈다.

 

“아, 아롬샘이 노란 민들레를 캐왔지. 나는 흰 민들레를 좀 캐왔는데. 자, 이건 아롬샘 해요.”

게다가 나와 겹치는 농산물은 쿨하게 나한테 넘기는 아량까지.

이번 플리마켓은 철저하게 차가운에게 의존하는 이벤트였다.

 

 

가장 먼저 매진된 자두나무 가지와 꽃차. 모두 차가운이 준비했다.

 

보안여관측에서 붓글씨로 설정한 차도유 푯말과 내가 준비한 유기농펑크 푯말과 냉이꽃 세팅.

 

플리마켓의 즐거움은 역시 먹을거리다.

 

베이컨을 판매하는 셀러가 우리가 판매하는 냉이꽃과 아스파라거스를 구워다 줬다. 맞은편 안동맥주에서 맥주를 얻어먹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라는 이름의 장터에서 아마추어 농부를 담당한 우리는 장터의 쓴맛을 봤다.

마르쉐 같은 파머스 마켓에 익숙한 차가운은 관람객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했다.

정성스레 수확한 토종농산물보다 자두가지가 가장 먼저 매진됐다.

빨간 꽃봉오리가 오른 자두가지는 관람객을 우리 부스로 모으는 역활을 톡톡히 했지만, 금방 동이나 버렸다.

나는 판매할 물품이 너무나 적었다. 준비과정에서 이야기 했지만, 이미 판매할 양보다 투자한 비용이 더 큰 상황이었다.

 

비 오는 날의 싸늘한 기온은 우리를 추위에 떨게 했고, 입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부스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셀러와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과정은 잠깐 즐거웠지만, 오랫동안 우리 부스보다 플리마켓의 정보를 묻는 관람객을 응대하며 차가운과 내 얼굴에서는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렇게 지쳐가는 동안 모종 12000원 어치를 사가며 2000원을 깎는 손님에게 친절히 대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결국에는 나보다 대농인 차가운이 깎아줬지만, 계속 한번씩 우리 부스로 찾아와 이것저것 묻는 그가 얄밉기까지 했다.

뒤돌아보니 별 일 아닌 일 같다만, 당시에는 그랬다.

 

그렇게 12시부터 6시까지 3만 9천원이 모였다. 이것이 첫 플리마켓의 총 수입이다. 눈물이 나니 순수익은 따로 적지 않겠다.

아아, 잔혹한 플리마켓. 농산물 수확만 해봐라, 내가 오늘의 굴욕을 반드시 만회하리라.

 

차가운이 건네준 쪽파, 대파, 달래

 

“아유, 이걸 어쩌지. 내일 김치 담가야 할까봐요.”

플리마켓이 끝나자, 마르쉐에서 높은 매출을 찍어온 차가운도 이날만큼은 많은 농산물을 집으로 갖고 돌아가야 했다.

나야 애초에 들고온 농산물이 없어서 들고갈 것도 없었지만, 이미 수확한 농산물을 가공할 걱정부터 하는 차가운에게는 이조차 노동의 증가였다.

일부는 나의 차지로 돌아왔다. 나는 차가운이 농사지은 대파와 쪽파, 달래를 선물 받았다.

 

내가 판매한 ‘해원의 샐러드 한 접시’가 이렇게 멋진 샐러드로 완성됐다. © 송고은

 

“귀여운 꽃잎이 들어있는 줄은 몰랐는데, 쑥도 생으로 먹으니 맛있더라고요.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오자 셀러 중 한 사람이었던 보안마켓 큐레이터 고은 씨에게 문자가 왔다.

내가 고생해서 뜯어 온 풀이 이렇게 멋진 샐러드가 되다니, 너무나 기뻤다.

이런게 바로 농부의 마음인가.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 하는 내가 정말 농부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이런식이라면 솔직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해야겠지.

게다가 이런 방식은 현실적이기보다는 낭만적이거나 나이브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확할테다.

하지만 다른 셀러와 연결되고, 특정 플리마켓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점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이렇게 셀러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 플리마켓에서는 차도유와 유기농펑크, 그리고 헬로파머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가능성을 본만큼 고민과 일거리가 한짐 늘어난, 잔혹했던 날이다.

 

이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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