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헬로파머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 안 짓고 사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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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벌어 적게 쓴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최지훈씨를 만나러 간 이유다.
일년 내내 놀고 먹고 싶다는 그가 평온하게 사는 방법을 알아보자.

 

베짱이농부 최지훈

베짱이농부 최지훈 ©최지훈씨 블로그

 

영농기반 크리에이터 ‘베짱이 농부’ 최지훈씨는 평창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 평창을 떠난 그는 성인이 될 때 까지 경기도에서 살았다.
방학 때나 부모님이 계신 평창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의 밭일을 도울 때마다 커서 평창에 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농사일은 지루하고 힘들었다.
방학이 끝나면 최지훈씨는 다시 경기도로 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그는 성인이 됐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일했다.
도시의 생활은 편하지만 괴로웠다.
대중교통과 문화시설이 편했다.
많은 사람과 바쁜 일상이 괴로웠다.

괴로움이 더 컸다. 건강이 나빠졌다.
일을 관뒀다.
쉬면서 군 문제나 해결하자고 생각했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평창에 온 최지훈씨는 외로움을 느꼈다.
평창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쉬고 놀고 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평창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군 복무를 마친 그는 서울로 돌아가려 했다.
떠나려는 그를 부모님이 붙잡았다.
1년만 더 있기로 했다. 발목을 잡혔다고 느꼈다.

외로웠다. 서울을 오가며 친구들과 만났다.
오가다보니 귀찮았다.
눈을 돌려 가까운 원주와 강릉을 오갔다.
이것도 귀찮아졌다. 남은 건 평창이었다.
평창을 돌아다녔다.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평창이 살만하다고 느꼈다.

평창을 떠날 날이 다가왔다.
평창에서 계속 살 건지, 다시 도시로 올라가 치여 살 지를 고민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며 사는건 너무 귀찮았다.
평창에서 계속 살기로 결심했다.

 

그가 돈을 버는 방법

평창의 겨울은 칼바람이 몰아친다.
최지훈씨는 겨울이면 집에 틀어박힌다.
드러누워 자거나, 쉬거나, 책을 읽는다.
마을 사람 중 몇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참다 못한 한 아저씨가 산으로 끌고 갔다.
나무가지들을 자르고 필요없는 나무를 잘랐다.
하루종일 일하고 10만원을 받았다.

최지훈씨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친한 스님은 할아버지 묘의 벌초를 부탁했다. 예초기를 들고 가 벌초를 해줬더니 고맙다며 돈을 줬다.
한 할머니는 읍내까지 태워달라 찾아왔다. 태워드렸더니 차비라며 돈을 줬다.
주는대로 받다보니 쏠쏠했다.
마을의 ‘홍반장’이 됐다.

©최지훈씨 블로그

 

아이러니하게도, 농사로 버는 수입은 별로 없다.
일을 도와주고 받는 돈이 더 많다.
시골에는 이런 부탁을 들어줄 청년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루에 10만원씩 번다고 치면, 15일만 일하면 150만원이니까.
한 달 30일 중에서 15일만 일하고 남은 절반인 15일은 놀 수도 있겠다고요.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집이 있고 빚이 없어서에요.
빚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못 했을거에요.”

 

그가 놀고 먹는 방법

“농사만 짓기에는 노는 게 너무 좋아요.”

최지훈씨가 자신을 ‘영농기반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농사만 짓기에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직접 키운 농산물로 파티를 열거나, 사람들과 지역을 여행한다.
전시를 기획하고, 일련의 과정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콘텐츠로 만든다.

그가 여는 파티에는 테마가 있다. 보성을 다녀온 달에는 녹차를 주제로 음식을 만들었다.
한 해금 연주자가 최지훈씨의 글을 보고 무료로 공연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차를 마시며, 녹차요리를 먹고, 해금 연주를 듣는 다이닝 쇼가 됐다.

하다보니 규모가 늘었다.
지역에 축제가 열리면 최지훈씨는 SNS로 축제를 홍보한다.
칼럼 요청이 오면 글을 쓴다.
무대 뒤의 스태프로 서는 경우도 빈번하다.
긴장하며 서 있다 보니 정작 재밌는 건 못 본다. 
의구심이 들었다.

©최지훈씨 블로그

“나는 노는 걸 좋아하는데, 왜 못 놀고 있지?”

고민 뒤 깨달았다. 일련의 행위들을 취미로 삼기로, 배우는 과정으로 생각하자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까 1년 내내 놀고 있는거죠.”

 

평창에 나타난 괴짜

마을에서 최지훈씨는 괴짜다.
평창이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사람이 내려왔다며 연예인 보듯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 게 없어 시골로 낙향했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비중이 큰 건 부정적인 사람들이었다.
시골에서 뭘 할 게 있냐며 얼른 도시로 돌아가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게 중에서는 안정적인 삶을 원하면 차라리 공무원을 하거나 취직을 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사실 최지훈씨가 하는 일이 뭔지 그의 부모님도 정확히 모른다.
돈 떨어졌다며 손을 벌리지도 않고, 뭘 하고는 있는데 신문에는 나오니 아리송한 상태로 내버려둔다.

 

“그런 분들이랑은 안 놀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만 놀아요.
자고, 눕고, 영화 보고, 책 읽다가 할 게 없으면 카페 가서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요.
절에 찾아가서 친한 스님 만나 차 마시고요.”

꿈이 뭐냐는 질문에, 최지훈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항상 놀고 먹고 싶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기회와 여건만 되면 그냥 뒹굴뒹굴 놀면서 따뜻한 나라에서 사는 게 꿈이에요.”

 

평창에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를 여유를 느꼈다. “저렇게 살아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김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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