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윤

'시끄러운 농촌'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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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귀촌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 영화를 보고 싶으면 멀리 떨어진 도시로 가야한다.
요즘 세상엔 노트북이나 TV로도 영화를 볼 수 있다지만, 가끔 고민이 많은 땐 덜컥 심야 영화를 보러가는 맛이 있다.
그 낭만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농촌에 영화관을 지을 만큼 부자도 아니다.
그래서 만들었다. 오직 시골에만 있는 불편하지만 특별한 영화제를.
 

 

영화관은 없어도, 영화제는 있지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도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제일 가까운 영화관은 전주에 있다.
그런데 영화제가 열렸단다. 레드카펫은 아니고 흙카펫이 깔린. 영화관도 없는 시골에서 영화제라니? 믿기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고산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결과, 집행위원장인 윤지은씨와 친구들이 모여 만든 ‘너멍굴 영화제’가 정말 존재하고 있었다.

 

“친구들이랑 영화제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만 하고 있었어요. 유기농업을 하는 친구는 자연친화적인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영화감독을 하는 친구는 독립영화를 상영할 채널이 별로 없으니까 감독들과 관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요.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모여 영화제를 만들게 되었죠.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영화제

너멍굴은 영화제를 처음 기획한 친구가 살던 곳의 이름에서 따왔다. 마을 어른들이 그 부근을 너머에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로 너멍굴이라고 불렀다.
너머에 있는 골짜기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불편’하다. 영화제가 열리는 논에 물을 빼기 위해 스태프들이 모여 삽질을 했다.
트랙터나 장비를 부르면 돈이 많이 드니까 어쩔 수 없다.
비가 와서 애써 물을 뺀 땅이 다시 질척거려 걱정이 더해졌다. 실패하면 그게 또 경험이지라는 생각으로 원래 계획대로 밀어붙였고, 다행히 날씨가 좋아 염려했던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관객들도 ‘불편’을 겪어야한다. 챙겨올 게 많다. 텐트도 직접 가져와야하고, 먹을 것도 싸와야한다.
세제라곤 천연 비누밖에 없어서 씻는 것도 지양한다. 영화제에 도착하면 셔틀 ‘트럭’이 시골길을 달려 마중 나온다.
불편하다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찾아오는 관객들이 생각보다 많다. 트럭이 시골길을 부지런히 오간다.
최신식 상영시설, 호화스러운 음식들도 없지만, 많은 사람이 찾는 이상한 상황.
왜 굳이 불편을 겪으러 고산까지 와?

 

“영화제가 아니라 파티같았어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떠들었죠. 불편한 장소에서 불편을 겪고, 불편을 겪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요. 그렇게 시작된 질문이 독립 영화나 유기 순환 농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어요. 대화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나중에는 관객들이 불편한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 이야기하더라고요.

 

누구에게나 불편하지만 포기하기 싫은 것들이 있다.
영화제를 찾아온 사람들도 불편하지만 포기하기 싫은 것들이 있었다.
도시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매력이다.

 

 

 

친구따라 고산간다

너멍굴 영화제 집행위원장 윤지은씨는 프로 도시러였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고산에는 연고도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산에 오게 된 결정적 이유는 과 동기다. 동기 따라 강남이 아닌 고산에 왔다.

농사 짓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동기가 작년에 고산으로 귀농했다. 친구 집에 몇 번 놀러가니 고산도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촌을 결심했다.

대책은 없었다. 수중엔 100만원 남짓의 돈이 전부. 당장 시골에서 뭘 먹고 살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거주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말 그대로 ‘젊음’을 믿고 몸으로 부딪혔다.

 

먼저 귀농한 과 동기가 멘토분을 소개해줬어요. 그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서울에서 왔다갔다하는 것보다 직접 여기 와서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찾아보는 게 나을거라고처음에는 걱정됐죠.
그래도 어차피 마음먹은거니까, 일단 급하게 거주할 공간을 찾아서 왔어요. 다행히 월세가 되게 싼 집이 있었어요. 무보증금에 한 달에 12만원인 집이었어요.

 

방 2개, 거실과 화장실도 있고 마당도 갖춘 집을 싼 가격에 구했다.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다.
장마철에는 물이 새고, 보일러도 자주 고장 나 고칠 게 투성이지만 살만은 하다.
고산에 자리를 잡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할 일을 찾았다.

할 일을 찾다보니 완두콩이라는 지역 소식지를 만드는 공간에서 기자를 하게 됐다.
출퇴근을 할 땐 자전거를 이용하고, 동네 마을회관 행사에 취재를 나간다.
취재를 나가서 송편을 빚는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농촌엔 도시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다른 삶이 있다.

 

농촌에 와서 좋은 건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거에요.
만약 제가 서울에서 계속 살았으면 그냥 취업 준비생이었겠죠. 공부하다가 회사에 들어가고, 비슷한 삶을 사는.
어디서 영화제 열린다고하면 관객으로 참여했겠죠. 근데 여기서는 제가 직접 뭔가를 하면서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게 신기해요.

 

도시에 놓고 온 것들이 후회될 때도 있다. 도시처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지은씨는 조금 불편한 농촌이 좋다.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고,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김채윤

'시끄러운 농촌'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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