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시골에서 농사 안 짓고 사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드론 등 신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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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거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으면 “뭘 키울건데? 어떻게 지을건데? 어떻게 팔건데? 네 농산물을 왜 소비자가 사야해?” 질문을 계속 한다.

답변은 점점 애매모호해진다. 나중에는 답변을 못 한다.

“농사 지을 생각하지 마라. 농사가 쉬워보이지. 쉽게 생각하고 들어갔다가는 빚만 잔뜩 얻고 인생 망쳐.”

농업도 다른 업계와 똑같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과 경쟁한다.

그들이 몸으로 익힌 경험은 쉽게 터득할 수 없다. 하다 못 해 그들마저 농산물을 헐값에 판다. 경매를 통해 가격이 정해지는 유통구조 때문이다.

“그럼 어떡하라고? 농사 짓지 말라고?”

“다른 농가에서 차마 흉내낼 수 없는 너만의 강점을 가져.”

혹자는 다른 농가들이 잘 키우지 않는 농산물을 재배한다. 희소성 하나만 믿고 간다.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배환경도 문제거니와, 소비자의 수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야, 어쩌라고.”

나도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좋은 참고 사례는 안다. 영월의 그래도팜이다.

그래도팜을 운영하는 원승현 농부는 자신이 쓴 ‘토마토 밭에서 꿈을 짓다’ 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너도 힘들었지? 나도 힘들어봤어. 난 이렇게 극복했는데, 너는 어때?”

 

 

1만명을 기다리게 한 마법의 브랜딩

 

그래도팜의 토마토 ‘기토’ ⓒ 그래도팜

 

영월에서 농사 짓는 ‘그래도팜’ 원승현 농부의 토마토 ‘기토’는 1만 명이 기다리는 토마토다.

처음엔 삼천 명이었다가, 오천 명이었다가, 지금은 만 명이 기다린다. 주문하면 바로 오는 것도 아니다. 2주 뒤에 온다.

오늘 밤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 오는 세상이다. 마트를 가도 널린 게 토마토다.

 

근데 왜 기다리냐고? 먹어보면 안댄다.

그렇지, 모든 농산물은 먹어봐야 알지. 근데 우리는 안 먹어봤다. 그럼 뭘 믿고 구매를 한단 말인가.

방법은 하나다. 기다릴 가치가 있다는 걸 믿게 만드는 것. 브랜딩이다.

 

그래도팜은 종이 박스를 쓰지 않는다. 스티로폼 박스에 기토를 담는다. 스티로폼 박스가 습기에 더 강하기 때문이다. 스티로폼에 담긴 기토 ⓒ그래도팜

 

원승현 농부는 홍대 미대를 졸업해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가 생각하는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택배로 오는 토마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포장재부터 스티로폼 박스로 바꿨다. 다른 농가는 종이박스를 쓴다. 원승현 농부의 토마토도 마찬가지였다.

포장재를 바꾼 이유는 단 하나. 종이박스보다 습기에 강하기 때문이다.

보관 방법과 기토 이야기가 담긴 종이 역시 토마토가 터져도 젖지 않게 비닐로 포장했다. 로고도 새겼다.

일반 방울토마토가 아닌 ‘그래도팜’의 ‘기토’로 불리길 원했다. 

 

겉만 번지르르 한 거 아니냐고? 아니다. 그러면 1만명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맛있다. 2주를 기다리는 이유가 맛 때문이다. 토마토가 가지에 매달려 충분히 숙성되면 딴다. 그래야 맛이 좋다.

‘맛있어 봐야 토마토가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편견을 깨고자 요리사부터 설득했다.

요리사들이 마르쉐에 자주 온다는 걸 알고 마르쉐에 나가 1년간 기토를 팔았다. 기토가 맛있다는 걸 안 쉐프들이 기토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다른 토마토 농가와는 모든 게 다르다. 이유는 단 하나. 소비자들은 사전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기토를 처음 구매한 소비자가 박스를 열었을 때 토마토들이 터져있다면 다음부터는 기토를 안 산다.

25년간 유기농 농사를 지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원승현 농부가 타협하지 않고 지켜 낸 결실, ‘기토’가 무용지물이 된다.

소비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는 그래도팜이 지켜낸 결실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다.

 

 

귀농을 준비한다면 눈여겨 볼 그래도팜의 이야기

 

원승현 농부도 귀농인이다.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인 영월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낭만을 꿈꾸고 왔다. 막상 오니 그가 생각한 낭만은 없었다. 새벽 다섯 시면 울리는 알람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귀향은 실패’라는 어른들의 편견과도 맞닥뜨려야했다. 반년동안 서울로 돌아갈지 말지 저울질했다.

1년이 되어서야 서울서 가져온 짐을 다 풀었다. ‘나 아니면 누가 하겠나’라는 생각이 그를 영월에 정착시켰다.

원승현 농부가 영월에 정착한 지 오래 된 지금, 그가 쓴 책 ‘토마토 밭에서 꿈을 짓다’를 통해 말한다.

그래도팜이 생각하는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왔고, 어떻게 1만명을 기다리게 했는지.

직거래 판매를 고민하고 있는 농부, 귀농을 준비하거나 이제 막 농촌에 내려 온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토마토 밭에서 꿈을 짓다> 원승현 | 틈새책방

© 틈새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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