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롬

'생태라는 틀에서의 농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골에서 미니피그 키우며 사는 로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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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찍 잠 드신 것 같은데, 간만에 몸 쓰셔서 너무 피곤하신 건 아닌가 싶어서 맥주 한 잔 하자고 말도 못 꺼냈지 뭐예요.”

사실 지난 밤, 같이 맥주 한 잔 하자 하려다 혹시 부담스레 들릴까 말을 꺼내지 못했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소심함을 탓하며 맥주 대신 모닝커피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돼지들이 있는 목장으로 출발했다.

 

농부의 시계를 미처 알지 못하고 도시 사람처럼 일어나 목장으로 갔더니, 이미 장훈 목부가 돼지들에게 밥을 준 이후였다.

지난날 한 일이라곤 목부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돼지와 자연을 감상한 게 전부였는데, 우리의 컨디션을 세심하게 살펴주는 장훈 목부는 우리에게 돼지와 놀며 쉴 것을 권했다.

하지만 목부와 친해지고 싶은 우리는 혹시나 밥과 잠자리만 축내는 진상 우퍼가 될까 걱정됐다.그래서 종일 목부를 졸졸 쫓아다니며 말했다.

“일거리 좀 주세요, 제발~!”

“도시 생활 하시다 오시면 어제의 경험도 충분히 힘들 수 있죠.”

헉, 어떻게 매번 이런 태도를 고수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사람이다.

 


 

궁극의 돌줍기

 

“그렇다면 풀밭에서 돌 좀 주워 주실래요?”

돈사 뒷쪽에는 풀이 자유롭게 자라도록 둔 땅이 있었다.

이번의 미션은 그 풀밭에서 돌을 줍는 거다. 처음 돌을 주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뜬금 없는 노동이라 생각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목부가 말을 잇는다.

 

목부는 풀을 베어 돼지들에게 주기 때문에 점점 키가 낮은 풀이 더 많아졌다고 이야기 했다.

 

“풀이 자라면 한번씩 베어다 돼지에게 간식으로 줘요. 그때 돌이 섞여 들어가면 돼지들 먹는데 불편할까봐 이따금씩 돌을 주워 줘요.”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됐다. 우리도 직접 키운 잎채소를 먹을 때 종종 흙을 씹어봐서 그 기분을 잘 알지.

돼지들아,걱정마. 우리만 믿어라.

처음엔 큼직큼직한 돌이 보이더니, 나중에는 시야에 돌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땅에 박힌 돌까지 채굴한다는 각오로 이후에는 돌을 줍기보다는 돌을 빼냈다.

오늘만큼은 농장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에 오버해서 돌을 줍다 보니 호박이 말라 비틀어진 잔해나 뜬금 없는 것들이 다 돌로 보이기 시작한다.

돌인줄 알고 달려갔더니 말라 비틀어진 호박의 잔해였다.

 

눈을 부릅뜨고 숨은 돌 찾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라기 공원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꾸에에엑” “히힝!” “왱!” “꽥!!!”

“푸하하하”

“여기 주라기 공원인가?!”

“갑자기 웬 공룡 소리가 나!”

“돼지가 꿀꿀 운다는 것도 참 편견이야, 그치?”

“응, 맞아. 내 귀에는 ‘왱왱왱왱…’ 이렇게 들리는 걸”

우리 눈앞에는 풀밭과 멀찌감치 돼지 우리가 있을 뿐인데 이 소리 실화냐.

돼돼와 나는 눈앞에 보이는 돼지를 보며 크게 한바탕 웃었다.

 

우리가 돌을 줍는 사이 목부 부부가 돌아왔다.

우리가 잘 보이려고 애써 가득 채운 돌수레를 보며 깜짝 놀라는 목부 부부.

뭘 하나 해도 잘했다, 고맙다 말해주는 그들이라 정말 우리가 시간대비 많이 주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보목부는 그저 칭찬에 춤 출 수 밖에.

 

채식을 할까, 잡식을 할까

다람쥐라는 이름의 돼지는 외모도 다람쥐를 닮은데다, 주로 다람쥐처럼 서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다.

 

“(왕돼) 동물 좋아하셔서 채식 대신 자연순환형 목장을 택했다는 다른 기사를 봤어요.”

“(돼돼) 저희도 돼지를 좋아하니까, 깜짝 놀란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하거든요.”

“(왕돼) 그런 얘기 너무 많이 들으니까 들을 때마다 ‘아, 채식해야 하나’ 싶어져요. 하하…”

“(장훈 목부) 제 아내가 채소 소믈리에잖아요. 식물들도 고통을 똑같이 느끼니까 사실 똑같은 거라고 이야기해요. 그래도 우리가 키운 돼지는 안 먹게 되더라고요.”

 

각자 성격이 다르고 다른 호기심과 행동을 취하는 돼지. 다른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동안 이렇게 홀로 풍경을 감상하는 돼지도 있다.

 

공장식 가축 사육에 반대하는 돼돼와 나는 돼지를 좋아하게 된 뒤로, 집에서 요리해 먹는 식재료에 대해서만큼은 원칙을 세웠다.

고기만큼은 공장식 사육을 하지 않는 고기를 사 먹자고. 그런 고기는 비싸다. 그만큼 우리는 예전보다 고기를 덜먹고 채소를 먹는 즐거움을 선택하기로 했다.

 

“(장훈 목부)처음에는 돼지를 도축장으로 보낼 때 직접 가지 않았어요. 막상 도축장에 가보니까 돼지를 정말 거칠게 대하더라고요. 그걸 본 뒤로는 직접 데리고 가요.거기 가보면 정말 ‘저런 아이들도 있나?’싶을 정도로 많이 다쳤거나, 심하게 부어있는 돼지도 종종 보여요. 그런걸 눈으로 계속 보니까 (돼지고기가) 잘 안 먹히는 것도 있어요.”

 

돼돼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오는 자연목장 돼지

 

자연목장의 돼지들은 사람이 다가오면 대부분 다가와 손에 코를 갖다대고 냄새를 맡는다.

물론 낯을 가리는 돼지도 있지만 냄새를 맡고 친숙해 졌다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도 화 내거나 당황해 하는 돼지가 없다.

“처음 다른 목장에서 일을 배울 때 사람이 조금만 다가와도 돼지가 도망가기 바빠요. 사람한테 좋은 기억이 없잖아요. 보면 거세하거나, 이빨을 뽑거나, 꼬리를 자르거나 주사를 놓거나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돼지들은 낯선 사람이 와도 도망가거나 경계하지 않아요. 얘들이 다른 목장 돼지들과 아예 다른 삶을 살면서 행복해 하는 걸 보면 ‘잘 하고 있구나’ 하면서 보람을 느껴요.”

 

목부의 말은 왜인지 채식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우리 두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이런 돼지목부가 이런 방식으로 계속 돼지를 키울 수 있다면, 우리는 채식보다는 돼지를 먹으며 이런 삶을 응원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했을 때 돼지와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좋은 방법 같으니.

행복한 돼지를 감사히 먹기로 한 우리의 결심이 더욱 확고해진 둘째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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