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곤

시골에서 농사 안 짓고 사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드론 등 신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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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특산품이 꿀이라고?”

어반비즈서울이 지난 추석 내놓은 선물세트에 적힌 카피를 보자마자 말도 안 된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반비즈서울은 ‘도시’인 ‘서울’에서 ‘양봉’을 하니, 맞는 말이긴 하다만, 기분이 이상했다.

보통 양봉은 농촌에서나 하는 것 아니었나?

 

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

왜 하필 도시, 그것도 서울에서 꿀벌을 키우는 걸까.

답은 ‘열매가 안 열려서’.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는 평일에는 회사일을, 주말에는 노들섬에 가 텃밭농사를 짓고 있었다.

열심히 일군 밭인데,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이유를 찾던 중, ‘벌’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을 듣고 벌을 키워보자는 생각에 차린 회사라는 것.

빌딩 옥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벌의 뒤로 빌딩과 도로가 보인다. / 어반비즈서울 제공.

 

“‘동생인 박진 대표가 텃밭 주인한테 왜 열매가 안 열릴까요?’라고 물어봤더니,
‘벌이 없어서 그래! 벌이 수정을 해줘야 하는데 벌이 없잖아!’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에요.
그 말을 듣고 텃밭에 벌통 다섯개를 놔둔 게 시작이에요.”
– 박찬 도시양봉가

박진 대표는 그날부로 ‘꿀벌덕후’가 됐다.

꿀벌에 대한 책을 읽고, 양봉 농가를 찾아다니며 꿀벌을 공부했다. 지금도 도시에서 벌을 키운다는 개념이 생소하지만, 그땐 개념조차 없었던 2013년이었다.

공부 끝에 강과 늪지가 많은 농촌보다는 건조한 도시가 벌을 키우기 더 적합한 환경이라는 걸 알게 됐다. 본격적으로 일을 벌리고 싶었다. 

“꿀벌을, 그것도 서울에서 꿀벌을 키운다는 것도 솔직히 쌩뚱맞잖아요.
근데 회사까지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아니다싶으면 동생을 말릴 심산으로 일을 거들었어요.”

박찬 도시양봉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벌을 키운다는 동생을 따라 주말마다 벌집이 있는 곳들을 2년간 돌아다녔다.

쌩뚱 맞다고 생각한 벌 키우는 게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회사 일을 하는데도 벌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최선에 대한 보상이 정해져 있잖아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봤자, 제가 올라갈 자리는 정해져 있는 거에요.
10년, 20년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활동적인 성격이지만 주중에는 회사에 갇혀 있어야 했다. 앉아 있는 삶에 염증이 났다.

벌이냐, 회사냐. 그것이 문제였다.

계속 고민하던 박찬 도시양봉가도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선뜻 답을 내리지 못했다.

벌통에서 꺼낸 벌들을 보고 있는 박찬 도시양봉가. / 어반비즈서울 제공

 

“액션을 취했죠.
제가 주말에 축구 하는 걸 좋아하는데, 축구도 안 나가고 동생 따라 벌 키우러 갔어요.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포기할 정도로 벌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러니까 나를 믿어 달라.
한동안 설득했더니 아내도 제가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OK 싸인을 내려줬어요.
형제가 벌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거죠.”

 

꿀 빠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벌을 키우기 위해서는 반경 2km 내에 먹이가 풍부해야 한다. 습기에 취약해 강이나 호수 근처에는 살기 힘들다.

주택가와 가까운 곳은 피해야 한다. 추위를 피해 벌집에 틀어박혀 있던 2만 마리의 벌들이 봄이 되면 무지막지한 배설물을 배출한다. 민원이 발생한다.

늦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벌들이 떼거지로 나온다. 역시나 민원감이다.

민원에 지쳐 올해는 민원이 발생할 것 같은 지역의 벌통을 다 빼버렸다.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 벌들이 죽는 일도 더러 있다.

하루종일 까탈스러운 벌만 보다보니, 박찬 도시양봉가는 벌과 인생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박찬 도시양봉가는, 벌을 키우는 것을 뮤지컬 같다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 어반비즈서울 제공.

“벌을 키우는건 뮤지컬같아요.
희노애락이 다 들어가 있거든요.
4월부터 6월까지는 꿀도 잘 되고 벌들도 활발해서 기분이 엄청 좋아요.
콧노래도 나와요.
근데 벌들이 아프거나 죽으면 많이 슬프죠.”

사람을 닮은 벌.

박찬 도시양봉가는 사람과 벌은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꿀벌의 역할은 사람과 많이 닮았다.

대기업처럼 일이 체계적이다.

“먹이를 잘 먹은 벌은 윤기가 나요. 먹을게 없는 벌은 도둑질도 하죠.
태어난 지 3일된 새끼 벌들은 로얄젤리만 먹여 애벌레를 키워요.
그다음은 밀랍을 뽑아 집만 만들고, 꿀을 모으죠.
수명이 다할때쯤엔 벌집을 지키죠. 정년퇴직인 셈이에요.
사람이랑 다를 게 없어요.”

오래 봐야 예쁘다. 벌도 그렇다.

몇년째 벌만 보고 살다보니 벌들이 예뻐 보일 때가 있다.

사람과 벌은, 별 다를 게 없다. 밥 잘 주고 잠 잘 재우면 잘 큰다. / 어반비즈서울제공

“꿀을 모아 온 벌들이 벌집으로 들어갈 때 몸을 부르르 떨어요.
꿀 때문에 몸이 너무 무거우면 벌들이 뒤뚱뒤뚱거리거든요.
그 모습이 되게 예뻐요.”

혹시 꿀벌이 사람을 쏘는 일은 없냐는 질문에는 “사람은 꽃이 아니잖아요.”라며 일축했다.

오히려 꿀벌은 사람을 무서워한다.

명동 유네스코회관 빌딩에 있는 어반비즈서울의 벌통들. / 어반비즈서울 제공.

“명동 한복판에 있는 유네스코 회관에도 저희 벌통이 있어요.
사람이 바글바글한 명동에서 꿀벌에 쏘였다면 뉴스에 나왔을텐데, 그런 뉴스가 없죠.
꿀벌은 꿀을 만드는데에만 관심이 있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은 꽃이 아니니까요.”

 

같이 꿀 빨기

꿀을 갖고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숙취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때 찾는 꿀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꿀물 때문에 선뜻 꿀 한 통을 사기는 힘들다.

어반비즈서울은 꿀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했다.

어반비즈서울이 동구밭과 협업해 만든 꿀비누. / 어반비즈서울 제공.

 

천연비누를 제작하는 동구밭과 함께 만든 꿀을 넣은 ‘꿀비누’, 호텔 옥상에 벌통을 설치한 이비스버젯앰배서더 동대문과 협업해 숙박권과 꿀을 함께 팔고 있다.

옥상 같이 남는 공간에서 벌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공간을 제공받고, 임대료로 꿀을 제공하는 허니뱅크도 시행중이다.

집도 없고, 옥상도 없지만 벌을 키워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있다.

매달 열리는 원데이클래스다. 원데이클래스를 마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달 간의 부트캠프를 개최한다.

부트캠프까지 모두 마친 사람에게는 도시양봉장들을 공유한다.

집도 옥상도 없지만, 같이 꿀을 빨 수 있다.

어반비즈서울이 판매하고 있는 꿀.

 

어반비즈서울의 목표는 도시양봉가 1만명을 육성해 서울을 ‘달콤한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벌집 한 통에 2만 마리가 사니까, 한 명당 한 통씩 잡으면 2억마리인 셈이다.

아직까지는 생소한 서울의 특산품 ‘꿀’.

도시양봉가가 1만명으로 늘어나고, 2억마리의 벌이 서울을 돌아다닐 때 쯤이면, 누구나 서울의 특산품을 ‘꿀’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김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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